엄마 절대 포기하지 않을게-416가족협의회 순범 어머니 인터뷰
김 우
416가족협의 대외협력팀장이며 6반 반대표인 순범 엄마는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냥저냥 활동하면서 지내지. 애견 미용 기초도 배우려고 2달 신청해서 교육 실습 중이야.”
“처음엔 귀 청소하고 발톱 깎고, 똥꼬 털이랑 배털 밀고 발바닥 털 밀고. 발등 털 밀고. 이제 등 밀고 하는 게 남았어.”
순서가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익히고 눈에 잘 띄는 전체 털은 가장 나중이다. 순범 엄마는 원래 혼자 미용실을 운영하는 미용사였다. 순범 엄마의 트레이드마크인 노란 머리도 물론 직접 염색한다. “10년 정도 됐지. 2015년인가 4월 말에 교통사고 나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야. 화를 어떻게 하지 못해서 계속 삭발했는데 갑자기 노란 머리를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416가족협의회 엄마 아빠들이 50명 가까이 같이 삭발한 뒤로 순범 엄마는 삭발을 반복하다가 아예 세월호의 상징인 노란색으로 머리를 물들여버린 거였다.
최근 416가족협의회 워크숍에서도 만나고, 생명안전공원 문화제에서도 함께했는데 얼마 전 김화순 작가의 전시 관련 모임에서도 순범 엄마를 볼 수 있었다. 인양한 세월호가 목포에 왔을 때 김 작가가 광주에서 찾아오며 인연이 이어진 거였다. 김 작가의 지난 전시회에서 4명의 초상화를 본 적이 있다. ‘팽목에 살다’는 우재 아빠를, ‘아버지 삼열 씨는 우릴 보고 웃는다’는 세호 아빠를, ‘그날’은 영석 엄마를 담았다. ‘광화문에 서다’라는 작품에 그려진 순범 엄마는 똑 순범 엄마였다. 2023년 작인 ‘생명평화의 바람이 불어’ 그림에도 순범 엄마가 등장한다. 생명평화 세상을 만들어 가며 연대하는 모습이다. 그림에서처럼 투쟁의 실을 자아올려 질기게 활동하는 순범 엄마의 마음 맨 밑바닥엔 순범이가 있다. “아들하고 매일 항상 얘기를 해요. 일기를 쓰거든. 몇 자 아니지만 일기 쓰면서 다짐을 해. ‘엄마 절대 포기하지 않을게’ 어떻게 보면 아들하고 하는 약속이잖아요. 포기할 수 없고 또 포기하고 싶지 않고. 끝까지 가야지. 그게 언제까진지 잘 모르겠지만.”
사진 1. 생명평화의 바람이 불어. 김화순 작
순범 엄마는 노란리본극단의 단원이기도 하다. <장기자랑>이라는 극에서 아이돌 박미라 역할은 참 인상적이었다. 몸에 웨이브를 주며 ‘의자춤’을 추는 장면은 내내 기억날 듯하다. “그게 쑥스러웠어요. 연출님이 시켜서 하는 거지.” 박미라는 피부도 하얗고 몸매도 짱이고 키도 크다는 대사가 대놓고 나올 때 ‘얼굴도 새카맣고 키도 작은’ 순범 엄마는 쑥스럽기 그지없었다고. 순범 엄마 기억에 남는 배역은 첫 출연작인 <이웃에 살고 이웃에 죽고>의 부녀회장 역이란다.
“연기의 연 자도 모를 때 동수 엄마가 ‘언니, 대사 없는 거 줄 테니까 연극 한번 해볼래?’ 해서 ‘대사 없으면 한 번 해볼 만하지’ 했지.”
“대사가 되개 많았어요. 어떻게 하지? 걱정했는데 서로 옆에서 도와줘서 하다 보니까 되대요. 되더라고. 하면 되는구나.”
극단의 엄마는 모두 7명이다. 사람이 없으니까 꾸준히 갈 수밖에 없다. 의견이 안 맞을 때 ‘아구, 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때도 몇 번 있었다.
“뛰쳐나간 적도 있는데 감독님이 우리 회의하는데 밖에서 기다렸어.”
“10년 동안 그런 엄마들 데리고 왔다는 것도 대단하고. 진짜 엄마들 성격이 다양하잖아. 속이 까맣게 타고도 남았지. 속상하고 답답하고. 여기까지 온 거 보면 우리도 대단하고.”
이제껏 엄마들을 다독이며 이끌고 온 김태현 감독의 ‘애환’은 이소현 감독의 다큐 <장기자랑>에도 잘 녹아있다. 노란리본극단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건 신의 때문인지 물었다. “그렇지 않아. 나 없어도 할 수 있지. 연극을 통해서 관객들 만났을 때 소통이 되고 암튼 뿌듯한 마음도 있고. 우리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우리 마음을 다 알아주고. 우리 엄마들 마음을. 할 때는 힘들고 해도 하고 나면 그런 마음 때문에 하는 거 같아요.”
이제껏 노란리본극단의 전 작품을 모두 보았는데 첫 작품부터 지금까지 모두가 재밌고 감동적이었다. 엄마들의 연기는 날로 늘었지만 어떻게 맨 첫 작품부터 그렇게 울고 웃으며 볼 수 있었던 건지. 연극은 연기 그 너머 진정성으로 빛을 발하기도 하는구나, 느꼈던 기억이다.
사진 2. 노란리본극단의 순범 엄마
순범 엄마는 요즘 홍성에 산다. 예전에 주말 농장처럼 쓰려고 얻어 놓았던 땅이 있었고, 순범이가 수학여행 다녀오면 상추랑 고추 심으러 가자고 약속했었다. “근데 못 갔잖아. 거기 있다 보니까 자리를 잡게 됐어요.” 순범이랑 함께하려던 텃밭 농사를 순범이 대신 짓는다. 순범이는 어떤 아이였을까.
“잘 챙겨주는 아이였어. 엄마 미용실 갔다 오면 밥도 해놓고 세탁기도 돌려놓고. 많이 챙기는 스타일로 누나들도 챙기고. 누나들 퇴근하면 집에 올 때 마중 나가고.”
“아들이 섬세하게 도와줘서 여성스럽다, 자상스럽다 그랬더니 딸이 안 그렇다고. 나가면 의젓하다고. 친구들이 얘기하는 거 보니까 친구들 얘기를 잘 들어줬대요. 친구들이 부르면 빨리 달려 나가고 얘기 들어주고 남자다웠다고.”
“알고 보니 ‘상남자’더라고. 멋진 남자였더라고. 순범이를 좋아한 여자 친구도 왔었거든. 순범이를 짝사랑하는 여자애들이 많았대요.”
자상함과 씩씩함을 고루 갖춘 순범이를 ’엄마가 되가지고 잘 몰라가지고. 저녁에 들어가서 잠만 자고 아침에 나오고. 섬세하게 챙기질 못하고 일만 하다 보니까‘ 다 알지 못했다는 순범 엄마. 오히려 주위에서 찾아와 순범이에 대해 들려주는 얘기가 보태지며 나중에야 더 잘 알게 됐다고 아쉬워한다.
“(세월호 참사) 초장에 힘들어서 정신과 약을 먹다가 안 먹었더니 공황이 와 버린 거야. 공황이 뭔지를 몰랐어. 화장실에서 머리 감는데 숨이 안 쉬어지는 거야. 일주일간 화장실엘 못 갔어요. 양치랑 세수도 싱크대에서 하고.”
“나는 약하지. 다른 사람들은 뭐 하나 떼내고, 쓸개든 뭐든. 관절 수술 몇 번 하고, 디스크 수술하고 이런 분들도 많고 많죠. 어깨 아파서 수술한 사람도 많더라고.”
“시간이 갈수록 더 아프고 힘이 들고. 뭔가 좀 밝혀지고, 이유를 알아야 하는데 몰라서 그런지.”
공황 장애 약에 고지혈증 약에 ‘밥을 제때 못 먹고 그러니까’ 위가 안 좋아져 먹는 약에... 하루에 먹어야 하는 약이 한둘이 아니다. 그래도 내가 아픈 건 아픈 축에도 못 낀다는 순범 엄마. 홍성에 놀러 오면 매콤한 찜 종류와 제철 해산물을 구워주마 약속한다. “여럿이 모여 있을 때나 만나야 술이 넘어가지, 혼자서 넘어가간디.” 평소에는 술을 안 마신다는 순범 엄마가 술 한잔 약속 카드도 내민다. “다른 게 아니라 시민들이 만들어 준 것들. 모아지니까 몇 박스나 돼서. 그거 버리지는 못하겠고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 전시장을 만들자, 그런 거야.” 순범 엄마네는 2층을 기억관으로 꾸몄다. 아픈 순범 엄마는 한두 잔만 드시라고 하고 난 열 잔 마시면서, 시민들이 전한 마음을 내내 간직해 꾸민 2층의 기억관을 둘러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겨울이 가기 전에 홍성엘 가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노란 은행잎은 지고 없어도, 샛노란 순범 엄마의 귀밑 머리를 넘겨주는 따듯한 밤을 기대한다.
사진 3. 활짝 웃는 순범 엄마
엄마 절대 포기하지 않을게-416가족협의회 순범 어머니 인터뷰
김 우
416가족협의 대외협력팀장이며 6반 반대표인 순범 엄마는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냥저냥 활동하면서 지내지. 애견 미용 기초도 배우려고 2달 신청해서 교육 실습 중이야.”
“처음엔 귀 청소하고 발톱 깎고, 똥꼬 털이랑 배털 밀고 발바닥 털 밀고. 발등 털 밀고. 이제 등 밀고 하는 게 남았어.”
순서가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익히고 눈에 잘 띄는 전체 털은 가장 나중이다. 순범 엄마는 원래 혼자 미용실을 운영하는 미용사였다. 순범 엄마의 트레이드마크인 노란 머리도 물론 직접 염색한다. “10년 정도 됐지. 2015년인가 4월 말에 교통사고 나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야. 화를 어떻게 하지 못해서 계속 삭발했는데 갑자기 노란 머리를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416가족협의회 엄마 아빠들이 50명 가까이 같이 삭발한 뒤로 순범 엄마는 삭발을 반복하다가 아예 세월호의 상징인 노란색으로 머리를 물들여버린 거였다.
최근 416가족협의회 워크숍에서도 만나고, 생명안전공원 문화제에서도 함께했는데 얼마 전 김화순 작가의 전시 관련 모임에서도 순범 엄마를 볼 수 있었다. 인양한 세월호가 목포에 왔을 때 김 작가가 광주에서 찾아오며 인연이 이어진 거였다. 김 작가의 지난 전시회에서 4명의 초상화를 본 적이 있다. ‘팽목에 살다’는 우재 아빠를, ‘아버지 삼열 씨는 우릴 보고 웃는다’는 세호 아빠를, ‘그날’은 영석 엄마를 담았다. ‘광화문에 서다’라는 작품에 그려진 순범 엄마는 똑 순범 엄마였다. 2023년 작인 ‘생명평화의 바람이 불어’ 그림에도 순범 엄마가 등장한다. 생명평화 세상을 만들어 가며 연대하는 모습이다. 그림에서처럼 투쟁의 실을 자아올려 질기게 활동하는 순범 엄마의 마음 맨 밑바닥엔 순범이가 있다. “아들하고 매일 항상 얘기를 해요. 일기를 쓰거든. 몇 자 아니지만 일기 쓰면서 다짐을 해. ‘엄마 절대 포기하지 않을게’ 어떻게 보면 아들하고 하는 약속이잖아요. 포기할 수 없고 또 포기하고 싶지 않고. 끝까지 가야지. 그게 언제까진지 잘 모르겠지만.”
사진 1. 생명평화의 바람이 불어. 김화순 작
순범 엄마는 노란리본극단의 단원이기도 하다. <장기자랑>이라는 극에서 아이돌 박미라 역할은 참 인상적이었다. 몸에 웨이브를 주며 ‘의자춤’을 추는 장면은 내내 기억날 듯하다. “그게 쑥스러웠어요. 연출님이 시켜서 하는 거지.” 박미라는 피부도 하얗고 몸매도 짱이고 키도 크다는 대사가 대놓고 나올 때 ‘얼굴도 새카맣고 키도 작은’ 순범 엄마는 쑥스럽기 그지없었다고. 순범 엄마 기억에 남는 배역은 첫 출연작인 <이웃에 살고 이웃에 죽고>의 부녀회장 역이란다.
“연기의 연 자도 모를 때 동수 엄마가 ‘언니, 대사 없는 거 줄 테니까 연극 한번 해볼래?’ 해서 ‘대사 없으면 한 번 해볼 만하지’ 했지.”
“대사가 되개 많았어요. 어떻게 하지? 걱정했는데 서로 옆에서 도와줘서 하다 보니까 되대요. 되더라고. 하면 되는구나.”
극단의 엄마는 모두 7명이다. 사람이 없으니까 꾸준히 갈 수밖에 없다. 의견이 안 맞을 때 ‘아구, 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때도 몇 번 있었다.
“뛰쳐나간 적도 있는데 감독님이 우리 회의하는데 밖에서 기다렸어.”
“10년 동안 그런 엄마들 데리고 왔다는 것도 대단하고. 진짜 엄마들 성격이 다양하잖아. 속이 까맣게 타고도 남았지. 속상하고 답답하고. 여기까지 온 거 보면 우리도 대단하고.”
이제껏 엄마들을 다독이며 이끌고 온 김태현 감독의 ‘애환’은 이소현 감독의 다큐 <장기자랑>에도 잘 녹아있다. 노란리본극단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건 신의 때문인지 물었다. “그렇지 않아. 나 없어도 할 수 있지. 연극을 통해서 관객들 만났을 때 소통이 되고 암튼 뿌듯한 마음도 있고. 우리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우리 마음을 다 알아주고. 우리 엄마들 마음을. 할 때는 힘들고 해도 하고 나면 그런 마음 때문에 하는 거 같아요.”
이제껏 노란리본극단의 전 작품을 모두 보았는데 첫 작품부터 지금까지 모두가 재밌고 감동적이었다. 엄마들의 연기는 날로 늘었지만 어떻게 맨 첫 작품부터 그렇게 울고 웃으며 볼 수 있었던 건지. 연극은 연기 그 너머 진정성으로 빛을 발하기도 하는구나, 느꼈던 기억이다.
사진 2. 노란리본극단의 순범 엄마
순범 엄마는 요즘 홍성에 산다. 예전에 주말 농장처럼 쓰려고 얻어 놓았던 땅이 있었고, 순범이가 수학여행 다녀오면 상추랑 고추 심으러 가자고 약속했었다. “근데 못 갔잖아. 거기 있다 보니까 자리를 잡게 됐어요.” 순범이랑 함께하려던 텃밭 농사를 순범이 대신 짓는다. 순범이는 어떤 아이였을까.
“잘 챙겨주는 아이였어. 엄마 미용실 갔다 오면 밥도 해놓고 세탁기도 돌려놓고. 많이 챙기는 스타일로 누나들도 챙기고. 누나들 퇴근하면 집에 올 때 마중 나가고.”
“아들이 섬세하게 도와줘서 여성스럽다, 자상스럽다 그랬더니 딸이 안 그렇다고. 나가면 의젓하다고. 친구들이 얘기하는 거 보니까 친구들 얘기를 잘 들어줬대요. 친구들이 부르면 빨리 달려 나가고 얘기 들어주고 남자다웠다고.”
“알고 보니 ‘상남자’더라고. 멋진 남자였더라고. 순범이를 좋아한 여자 친구도 왔었거든. 순범이를 짝사랑하는 여자애들이 많았대요.”
자상함과 씩씩함을 고루 갖춘 순범이를 ’엄마가 되가지고 잘 몰라가지고. 저녁에 들어가서 잠만 자고 아침에 나오고. 섬세하게 챙기질 못하고 일만 하다 보니까‘ 다 알지 못했다는 순범 엄마. 오히려 주위에서 찾아와 순범이에 대해 들려주는 얘기가 보태지며 나중에야 더 잘 알게 됐다고 아쉬워한다.
“(세월호 참사) 초장에 힘들어서 정신과 약을 먹다가 안 먹었더니 공황이 와 버린 거야. 공황이 뭔지를 몰랐어. 화장실에서 머리 감는데 숨이 안 쉬어지는 거야. 일주일간 화장실엘 못 갔어요. 양치랑 세수도 싱크대에서 하고.”
“나는 약하지. 다른 사람들은 뭐 하나 떼내고, 쓸개든 뭐든. 관절 수술 몇 번 하고, 디스크 수술하고 이런 분들도 많고 많죠. 어깨 아파서 수술한 사람도 많더라고.”
“시간이 갈수록 더 아프고 힘이 들고. 뭔가 좀 밝혀지고, 이유를 알아야 하는데 몰라서 그런지.”
공황 장애 약에 고지혈증 약에 ‘밥을 제때 못 먹고 그러니까’ 위가 안 좋아져 먹는 약에... 하루에 먹어야 하는 약이 한둘이 아니다. 그래도 내가 아픈 건 아픈 축에도 못 낀다는 순범 엄마. 홍성에 놀러 오면 매콤한 찜 종류와 제철 해산물을 구워주마 약속한다. “여럿이 모여 있을 때나 만나야 술이 넘어가지, 혼자서 넘어가간디.” 평소에는 술을 안 마신다는 순범 엄마가 술 한잔 약속 카드도 내민다. “다른 게 아니라 시민들이 만들어 준 것들. 모아지니까 몇 박스나 돼서. 그거 버리지는 못하겠고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 전시장을 만들자, 그런 거야.” 순범 엄마네는 2층을 기억관으로 꾸몄다. 아픈 순범 엄마는 한두 잔만 드시라고 하고 난 열 잔 마시면서, 시민들이 전한 마음을 내내 간직해 꾸민 2층의 기억관을 둘러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겨울이 가기 전에 홍성엘 가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노란 은행잎은 지고 없어도, 샛노란 순범 엄마의 귀밑 머리를 넘겨주는 따듯한 밤을 기대한다.
사진 3. 활짝 웃는 순범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