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닮은 사람[16일의 편지-2024년 9월] 엄마의 마음으로, 사람의 마음으로-이서윤 회원님 인터뷰

2024-09-13

엄마의 마음으로, 사람의 마음으로-이서윤 회원님 인터뷰


김 우


사진) 녹번역 앞에서 세은모 활동


“세월호참사 이전에 다른 활동하신 적 있으셔요?” 

“아뇨. 없어요. 아이들 키우며 직장 다니던 평범한 사람이거든요.”

‘세월호를 기억하는 은평사람들의 모임(이하 세은모)’ 이서윤 회원. 지금은 29세, 25세가 된 서윤님의  자녀들이 세월호참사 당시엔 희생된 아이 또래인 중고등학생었다. 자식 키우는 처지에 남 일 같지 않았던 게 세월호 활동에 ‘올인’하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 

“아이들 사연이 계속 올라오고. 어떻게 자랐고, 부모에겐 어떤 아이였고. 사연마다 가슴이 아파서 밤낮으로 울었어요.”

남편도 라디오 뉴스를 틀고 출근하다가 사연에 눈물 나서 차를 세우고 울다가 출근하곤 했다고 한다. 연애하던 시절에도 남편이 마음이 모질지 못하고 여리고 눈물이 많은 사람이라서 끌렸다던 이 회원. 감성 깊은 부부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식 키우는 부모의 마음,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공감하며 보듬는 사람의 마음이야말로 세월호 활동하는 이들의 기본이란 걸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 회원은 세월호참사는 물론 이후 이태원참사나 채 상병 사건 등 특히 ‘자식들 관련한’ 사건에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2014년 참사 이후 집에서 울고불고만 있었다는 이 회원은 7월경 SNS에서 ‘어떤 한 어머니’가 광화문에서 피켓팅을 시작한 걸 보고 광화문으로 나가게 됐다. 전국의 엄마들이 모여서 피켓팅하는 단체인 ‘리멤버 0416’과 활동하게 됐다. 진상규명 활동을 광화문이나 시청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나가서 하되 지역에서 확장해 나가기 힘들었는데 마침 2016년에 ‘세월호 변호사’ 박주민이 은평에서 공천을 받았다. 

선거운동 자원봉사자 밴드나 단톡방에는 세월호를 기억하고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매주 금요일마다 지하철역에서 피켓팅, 서명 운동, 리본 나눔을 하겠다는 안내문을 올리며 사람들을 모았다. 그랬다. ‘아이들 키우며 직장 다니던 평범한 사람’ 이서윤이 바로 세은모를 만든 사람이었다. 

세은모는 4~5명이 시작해서 지금은 12명 정도가 꾸준히 활동하고 있고, 더불어 매년 추모 행사를 같이하는 80여 단체는 ‘은평 416연대’를 구성하고 있다. 리멤버 0416의 멤버들도 20여 명이 변함없이 지역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매년 4월 16일이 되면 서울에서 모여 거리 피켓팅을 함께한다. 올해는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진행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공휴일이 아니라 평일이라도 휴가 내서 오전에 피켓팅하고, 오후에 안산으로 가죠.” 

사진)진실을 보도하지 않는 KBS방송국의 후문 앞에서 리멤버 0416 활동으로 피켓팅


“서윤 님이 꾸준히 활동을 이어오는 힘은 어디에 있을까요?”

“언젠가 딸이 해준 말이 있어요. 엄마가 세월호 활동을 하는 게 너무 자랑스럽다고. 그때 눈물이 왈칵 났어요.” 

“세월호참사 이후에도 사회적 참사가 계속 일어나는 걸 보면서 세월호참사가 제대로 진상규명이 안 돼서 이렇게 또 일어나니 꼭 밝혀야겠다는 오기가 생겨요. 반드시 진상규명하고 재발 방지해야 아이들이, 후손들이 살아갈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런 생각들이 저한테는 계속 나아가게 하는 거 아닌가 싶어요.”

‘잘하고 있다, 열심히 해라’라는 가족들의 응원은 이 회원에게 든든하고, 거듭되는 참사의 사회를 안전한 사회로 바꾸어내겠다는 이 회원의 각오는 단단하다.

“유가족분들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제가 항상 곁에 있을 거라는 거예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니까요.” 

“22일에 별빛 걷기 행사를 은평에서 해요. 가족분들 몇 분 오실 텐데 많이 안아드리고 싶어요. 그동안 유가족들이 굉장히 많이 비난받고 욕먹으면서도 버텨주셔서 우리도 버틸 수 있었어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외에도 우리가 유가족 마음의 상처 치유에도 관심 갖고 활동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요구하고 그런 사회를 만들어가야죠.”

22일. 은평엔 밤하늘의 별이 유난히 반짝일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