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의 상주(喪主)가 되어야 합니다
입춘이 지났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옷깃을 여미게 되는 2월입니다. 아직 가시지 않은 찬 바람 속에서 여러분은 안녕하신지요. 저는 이번 겨울, 조금 무거운 주제의 책들과 씨름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애도하는 게 일입니다>, <죽은 다음>, 그리고 <퀴어한 장례와 애도>. 제목부터 '죽음'과 '장례'를 다루는 책들이었죠.
유독 이 주제가 제 마음을 붙들었던 건, 저의 개인적인 불안 때문이었습니다. 늦둥이 막내인 데다 사랑하는 동성 파트너와 살고 있는 저는 덜컥 겁이 날 때가 있습니다. "법적인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내 파트너가 내 장례식에서 쫓겨나면 어떡하지?", "우리가 서로의 마지막을 지켜줄 수 있을까?" 하는 질문들이 저를 옥죄어 오곤 했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고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 답답함이 낯설지가 않았습니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4.16연대 회원들과 연대 시민들이 광장에서 외쳤던 목소리와 너무나 닮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책 <애도하는 게 일입니다>에는 '사별자(死別者)'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법적 권한을 가진 '유가족'은 아니지만, 고인과 삶을 나누고 함께 아파한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우리 사회는 혈연 중심의 '정상 가족'이 아니면 슬퍼할 자격조차 쉽게 주지 않습니다. 퀴어 커뮤니티에서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고도 장례식장 문턱을 넘지 못해 우는 것처럼, 사회적 참사 앞에서도 세상은 자꾸만 자격을 묻습니다. "가족도 아닌데 왜 그러느냐", "이제 그만하라"며 우리의 슬픔을 통제하려 듭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피를 나누지 않았어도, 고통을 함께 나눈 우리는 이미 서로에게 깊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요.
얼마 전 4.16연대 내의 청년 책모임에서 <퀴어한 장례와 애도>를 함께 읽던 중, 한 회원님께서 "이태원 참사 당시 분향소를 지키던 시민들을 '상주'라고 불렀어요.”라는 이야기를 하셨어요. 세월호 참사 이후 팽목항에서, 광화문에서, 안산에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리본을 달고 자리를 지켰던 회원 여러분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우리가 서로의 곁을 지킨 그 시간들이야말로 국가가 방기한 애도를 완성해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저는 파트너가 제 장례식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기꺼이 '까다로운 조력자'가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4.16연대 활동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세상이 보기에 조금 더 '까다로운'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떠난 이들을 사랑하는 우리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혈연보다 진한 연대로 묶인 4.16연대 회원 여러분. 우리는 앞으로도 서로의 안녕을 묻고, 서로의 슬픔을 가장 먼저 알아주는 '사회적 상주'로 살아갑시다. 남은 겨울 건강 유의하시고, 다가올 봄에도 그 단단한 곁을 내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2026년 2월 16일 활동가 슬기 드림
우리는 서로의 상주(喪主)가 되어야 합니다
입춘이 지났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옷깃을 여미게 되는 2월입니다. 아직 가시지 않은 찬 바람 속에서 여러분은 안녕하신지요. 저는 이번 겨울, 조금 무거운 주제의 책들과 씨름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애도하는 게 일입니다>, <죽은 다음>, 그리고 <퀴어한 장례와 애도>. 제목부터 '죽음'과 '장례'를 다루는 책들이었죠.
유독 이 주제가 제 마음을 붙들었던 건, 저의 개인적인 불안 때문이었습니다. 늦둥이 막내인 데다 사랑하는 동성 파트너와 살고 있는 저는 덜컥 겁이 날 때가 있습니다. "법적인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내 파트너가 내 장례식에서 쫓겨나면 어떡하지?", "우리가 서로의 마지막을 지켜줄 수 있을까?" 하는 질문들이 저를 옥죄어 오곤 했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고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 답답함이 낯설지가 않았습니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4.16연대 회원들과 연대 시민들이 광장에서 외쳤던 목소리와 너무나 닮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책 <애도하는 게 일입니다>에는 '사별자(死別者)'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법적 권한을 가진 '유가족'은 아니지만, 고인과 삶을 나누고 함께 아파한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우리 사회는 혈연 중심의 '정상 가족'이 아니면 슬퍼할 자격조차 쉽게 주지 않습니다. 퀴어 커뮤니티에서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고도 장례식장 문턱을 넘지 못해 우는 것처럼, 사회적 참사 앞에서도 세상은 자꾸만 자격을 묻습니다. "가족도 아닌데 왜 그러느냐", "이제 그만하라"며 우리의 슬픔을 통제하려 듭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피를 나누지 않았어도, 고통을 함께 나눈 우리는 이미 서로에게 깊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요.
얼마 전 4.16연대 내의 청년 책모임에서 <퀴어한 장례와 애도>를 함께 읽던 중, 한 회원님께서 "이태원 참사 당시 분향소를 지키던 시민들을 '상주'라고 불렀어요.”라는 이야기를 하셨어요. 세월호 참사 이후 팽목항에서, 광화문에서, 안산에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리본을 달고 자리를 지켰던 회원 여러분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우리가 서로의 곁을 지킨 그 시간들이야말로 국가가 방기한 애도를 완성해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저는 파트너가 제 장례식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기꺼이 '까다로운 조력자'가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4.16연대 활동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세상이 보기에 조금 더 '까다로운'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떠난 이들을 사랑하는 우리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혈연보다 진한 연대로 묶인 4.16연대 회원 여러분. 우리는 앞으로도 서로의 안녕을 묻고, 서로의 슬픔을 가장 먼저 알아주는 '사회적 상주'로 살아갑시다. 남은 겨울 건강 유의하시고, 다가올 봄에도 그 단단한 곁을 내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2026년 2월 16일 활동가 슬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