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갛게 씻긴 차돌멩이 같은 단단함으로
김 우
제주에 왔다. 수도권이 아닌 지역 회원을 만날 절호의 기회. 세월호 제주 기억관을 위탁 운영하는 평화쉼터의 활동가 신동훈 회원을 만났다.
나랑 동갑내기. 쉰 줄에 들어섰는데도 동안 느낌이되 참 말갛다는 인상이었다.
신 회원은 해고자와 장기 투쟁사업장을 지원하는 일을 오래 했다. 전체 활동가의 쉼터를 만들려는 마음을 모았다. ‘절대 권력에 저항운동을 하며 쉼이 필요한 활동가가 보름 이상 무료로 쉬어갈 수 있는 곳’을 꿈꾸었다.
“당신 어차피 말려도 할 거잖아.”
옆지기가 했다는 한마디에서도 그의 단단함을 읽는다. 의기투합한 세 명이 집도 팔고 퇴직금도 정산하고 전세도 빼고 후원도 받고 은행 빚도 얻어가며 어찌어찌 운 좋게도 제주 땅값이 널을 뛰기 전인 2012년에 땅을 마련할 수 있었다.
애월을 거쳐 2014년 4.3 평화기념관 근처에 정착했고 ‘그러다 세월호 참사를 만났다.’
3개 동 평화쉼터 중 1개 동의 1층이 세월호 기억관이다. 아이들이 오고 싶었던 곳 제주, 하지만 닿지 못했던 곳 제주에 기억관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제주의 기억관은 일반 관광객을 만날 수 있는 장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해상 교통사고’라고 하다가 1시간여 이야기 끝에 “왜 국가가 사과하고 나서서 해결해야 하는지, 이제 알겠다.”던 관광객의 성찰이 고마웠다.
광화문에서 근무하던 경찰관이 전출 와서 가족과 함께 기억관을 찾아 방명록을 쓰고, ‘광화문 분향소에 차마 못 가봤다, 유족들에게 마음 전해 달라’던 당부도 의미 깊었다.
기억관의 올해 7주기 행사명은 ‘우리는 세월호를 노랑노랑해요’였다. 맞춤법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무거운 슬픔보다 내내 함께할 따듯함을 담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 마음은 기억관의 노래에도 흐르고, 7주기 기억길에도 함께한다. 제주 둘레길 중 예쁜 사계동동에서 아름다운 산방산까지 4.16km를 지정했다. 아이들이 제주에 왔다면 보았을 파란 하늘, 푸른 바다, 노란 유채꽃의 길이었다.
평화쉼터와 기억관은 좌우 대립이 극명한 제주에서 조심스레 안착 중이다. 여러 단체에 후원 나눔이라도 할라치면 인근 어르신부터 세심하게 챙기고, 활동가들은 부근 귤밭 일손 돕기도 바지런히 다니고 있다. 반짝이는 노란 리본 등도 1년 전에야 세웠고 100m 앞에 기억관이 있다는 안내 입간판도 이제서야 설치했다. 말갛게 씻긴 차돌멩이 같은 단단함으로, 그렇게 한발 한발 걷는다.
4.3 평화공원에 찾아오는 연인원 40만의 10분의 1이라도 근처 기억관으로 발걸음하면 좋겠다는 기억지기 신 회원의 바람. ‘산방산에 가고 사려니숲길에도 가야지’ 따위의 제주 여행계획 안에 제주 4.3을 기억하는 다크투어가 자리 잡았으면, ‘제주 기억관엔 꼭 들러야지’ 하는 다짐도 포함되었으면, 나 역시 희망해 본다.


말갛게 씻긴 차돌멩이 같은 단단함으로
김 우
제주에 왔다. 수도권이 아닌 지역 회원을 만날 절호의 기회. 세월호 제주 기억관을 위탁 운영하는 평화쉼터의 활동가 신동훈 회원을 만났다.
나랑 동갑내기. 쉰 줄에 들어섰는데도 동안 느낌이되 참 말갛다는 인상이었다.
신 회원은 해고자와 장기 투쟁사업장을 지원하는 일을 오래 했다. 전체 활동가의 쉼터를 만들려는 마음을 모았다. ‘절대 권력에 저항운동을 하며 쉼이 필요한 활동가가 보름 이상 무료로 쉬어갈 수 있는 곳’을 꿈꾸었다.
“당신 어차피 말려도 할 거잖아.”
옆지기가 했다는 한마디에서도 그의 단단함을 읽는다. 의기투합한 세 명이 집도 팔고 퇴직금도 정산하고 전세도 빼고 후원도 받고 은행 빚도 얻어가며 어찌어찌 운 좋게도 제주 땅값이 널을 뛰기 전인 2012년에 땅을 마련할 수 있었다.
애월을 거쳐 2014년 4.3 평화기념관 근처에 정착했고 ‘그러다 세월호 참사를 만났다.’
3개 동 평화쉼터 중 1개 동의 1층이 세월호 기억관이다. 아이들이 오고 싶었던 곳 제주, 하지만 닿지 못했던 곳 제주에 기억관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제주의 기억관은 일반 관광객을 만날 수 있는 장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해상 교통사고’라고 하다가 1시간여 이야기 끝에 “왜 국가가 사과하고 나서서 해결해야 하는지, 이제 알겠다.”던 관광객의 성찰이 고마웠다.
광화문에서 근무하던 경찰관이 전출 와서 가족과 함께 기억관을 찾아 방명록을 쓰고, ‘광화문 분향소에 차마 못 가봤다, 유족들에게 마음 전해 달라’던 당부도 의미 깊었다.
기억관의 올해 7주기 행사명은 ‘우리는 세월호를 노랑노랑해요’였다. 맞춤법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무거운 슬픔보다 내내 함께할 따듯함을 담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 마음은 기억관의 노래에도 흐르고, 7주기 기억길에도 함께한다. 제주 둘레길 중 예쁜 사계동동에서 아름다운 산방산까지 4.16km를 지정했다. 아이들이 제주에 왔다면 보았을 파란 하늘, 푸른 바다, 노란 유채꽃의 길이었다.
평화쉼터와 기억관은 좌우 대립이 극명한 제주에서 조심스레 안착 중이다. 여러 단체에 후원 나눔이라도 할라치면 인근 어르신부터 세심하게 챙기고, 활동가들은 부근 귤밭 일손 돕기도 바지런히 다니고 있다. 반짝이는 노란 리본 등도 1년 전에야 세웠고 100m 앞에 기억관이 있다는 안내 입간판도 이제서야 설치했다. 말갛게 씻긴 차돌멩이 같은 단단함으로, 그렇게 한발 한발 걷는다.
4.3 평화공원에 찾아오는 연인원 40만의 10분의 1이라도 근처 기억관으로 발걸음하면 좋겠다는 기억지기 신 회원의 바람. ‘산방산에 가고 사려니숲길에도 가야지’ 따위의 제주 여행계획 안에 제주 4.3을 기억하는 다크투어가 자리 잡았으면, ‘제주 기억관엔 꼭 들러야지’ 하는 다짐도 포함되었으면, 나 역시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