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목기억캠프를 다양한 시선에서 담았습니다. 해윤 님은 서울부터 팽목까지 먼 길을 함께 해주셨습니다. 해윤 님은 후기글 마지막에 "이번 캠프에서 후기에서는 제가 느꼈던 팽목함의 따뜻함과 아픔, 그리움이 지켜내는 용기 이 모든 것들을 전하고 싶었습니다"라는 메세지를 남겨주셨습니다. 많은 감정을 함께 나눠주신 해윤 님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4.16연대 사무처 정옥다예
진도 팽목항 세월호 다섯번째 팽목기억캠프
강동평화의소녀상 보존 시민위원회 강해윤

개인적인 사정으로 이제서야 방문한 진도 팽목항. 그간 계획만 갖고 있던 일들을 4.16연대 활동가분들과 함께 방문하게 되었다. 서울에서는 여러가지 활동과 집회에 참여도 했지만 팽목항을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그 즈음 여러가지 개인적인 사정으로 마음에만 담아두게 되었던 곳 팽목항. 기다림의등대, 기억의 벽, 노란리본, 바다.... 우리 아이들 가족... 우리들의 아픈 기억을... 흔적이 지워지지 않게 유가족 분들이 돌아가며 일상과 함께 지켜내고 있는 곳. 그렇게 11년이 넘게 흘렀고 아직도 우리가 진실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시작점. 진도 팽목항.
점심을 먹고 버스로 이동을 해서 세월호 기억의숲에서 도보로 팽목항까지 걸어왔다.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아이들 얘기도 하고 언제 도착하냐며 괜한 질문도 해서 조금만 더 가면 도착이라는 정해진 답변에 다같이 믿지 못하겠다면 웃어도 보지만 팽목항으로 향하는 그 걸음속에 담김 마음은 다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우리는 아직 개통되지 않은 새로 생긴 도로로 걸었는데 차가 없어서 좀 편안하게 걸을 수 있었다. 앞으로는 이 길을 이용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이용했던 옆으로 보이는 구도로는 좁고 차가 다녀 좀 불편해 보였고 살짝 돌아가야 해서 더 오래 걸어야 했던 것 같다. 일단 앞으로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이 더 안전하게 걸을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라 생각이 들었다.
팽목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저녁식사를 준비중이신 가족분들과 제주에서 다섯번째 팽목기억캠프를 함께 하려고 올라와 준 세제모 학생들이 10명쯤 그리고 저녁 공연을 준비 중인 여러 출연자 분들이 계셨다. 추모동에서 아이들과 인사를 하고 짐을 풀고 안내사항을 듣고 팽목항 주변을 둘러보았다. 팽목항은 기억 강당, 식당, 성당, 그리고 간이 화장실. 이렇게 컨테이너 5개동이 띄엄띄엄 자리 잡고 있었다. 다른 시설들도 많이 낡고 있었지만 화장실은 5분거리 터미널을 이용하는 게 편하다고 안내해 주실 정도로 겨울에는 씻기 힘들 정로 추울 것 같았다. 이렇게 10여 년의 세월을 지켜내고 버텨낸 유가족과 연대해주신 분들 생각에 울컥했다.
제일 처음 보게된 기억관에서 묵념을 하고 아이들 한명 한명 이름을 마음으로 부르며 인사를 대신했다. 기억관이라고 해봤자 아이들 사진, 아이들 이름이 새겨진 손바닥만한 나무배 종이배, 노란 리본들 전국에서 보내 온 추모의 글과 그림, 노란리본들 추모할 수 있는 작은 모형들...이 전부이지만.. 모든 움직임 하나하나가 느껴져 그냥 마음이 따끔거렸다. 인사 후 강당에 짐을 풀고 나오며 신발을 신는데 저녁식사를 준비중인 식당이 보였다. 파랑 바탕에 노랑 고래와 노란풍등 아이들이 그려진 벽 가운데 창문으로 삐쭉 고개를 내민 연통에는 연기가 모락목락 피어 나오고 있었다. 함께 기억해준다는 것만으로 고마워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유가족 분들의 마음이 느껴져서 10여 년의 세월이 야속했다. 식당으로 들어가서 약 50인분의 저녁식사를 준비하시느라 정신없이 바쁜 유가족분들께 인사를 하고 혹시 손이 모자라지 않을까 괜한 질문도 해보다 방해만 될꺼 같아 나왔다. 세종에서 오신 활동가분들 틈에 끼어서 기억의등대로 갔다. 답답한 마음..
이렇게 지켜내주셨다는 감사함 그리고 따뜻한 마음, 미안함 .... 그날 무서운 추위 속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을 희생자분들과 기다리던 사람들, 들리지 않는 대답, 그리고 소중한 우리 가족들, 국민들을 구하지 않았던 그들을 원망하는 마음이 출렁였다. 뒤죽박죽 무능력해진 우리 마음들이 떠올랐다. 짦은 인사를 마치고 기억하기 위한 사진을 몇 장 남기고 유가족 아버님께 그간 겪었던 일들 그리고 새로 자리 잡을 기억관에 관한 이런저런 얘기도 하면서 둘러보는데 비가 점점 더 많이내리기 시작해서 돌아오는 길에 터미널 맞은편의 작은 카페에 추위를 피해 들어갔다. 다 같이 챙겨주신 세종연대활동가님들의 따뜻한 마음에 다시한번 감사드린다.
비가 잦아들 즈음 카페를 나와 저녁을 먹으러 식당으로 향했다. 제주에서 온 세제모(세월호를 기억하는 제주청소년모임) 학생들이 공연을 준비로 먼저 식사를 하고 있어서 다시 잠시 틈이 생겼다. 그때 강당에서는 농협은행 직원 여성모임에서 오신 오카리나 공연팀이 연습을 하고 계셨는데 오카리나 소리가 울려펴지는 소리에 바다를 보고 있자니 언젠가 세월호 안전교육 강의를 들으러 갔을때 보게된 학교에서 웃고 떠들던 아이들의 모습이 생각났다. 교복치마에 체육복 바지를 입고 티없이 웃던 아이들 체육복과 교복을 입고 장난치던 아이들.... 그렇게 문득 우리 아이들이 명예졸업장을 받았다는 것이 다시 생각이 나니 바다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할 정도로 원망스런 마음이 들었다. 바다를 원망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10여년의 세월, 아이들의 기억을 잊혀지지 않게 하기위해 치열하게 지켜낸 유가족 분들이 더 지치지 않게 함께하는 것이 앞으로 우리가 해야하는 일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 저녁을 먹으러 식당으로 들어오라고 하셔서 들어간 식당에는 뷔페가 차려져 있었다. 정성을 다해 준비해주신 맛있는 저녁을 감사히 먹고 공연을 보러 강당으로 이동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제주에서 온 세제모 학생들의 군무시간. 너무 열심히 마음을다 해 추고 있다는 순수함이 느껴진 순간 제주로 향하는 배를 기다리며 수학여행 장기자랑을 몰래 준비했을 아이들이 모습이 생각났다. 세제모학생들 사이사이 함께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았다. 눈물이 나서 누군가와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추스려가는 마음에 커져가는 그리움에 혹시나 내 눈물이 또다시 작은 상처가 되지는 않을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중에 보니 나만 눈물이 난 게 아니라서 다행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정성스럽게 준비해주신 전통 풍물놀이. 우리네 아픈역사 5월의 노래를 4월의 노래로 개사해서 불러주신 광주에서 활동하신다는 남녀듀오 박성언밴드, 마음을 토닥여주시는 듯한 진도 농협은행 여성회 오카리나연주와 노래, 안산에서 예술활동을 하시는 내외분 오늘 팽목항을 지켜주시고 캠프를 준비해주신 유가족분들 우리는 그렇게 한 마음으로 공연을 지켜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알아가고 같은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온전한 진실 생명존중 안전한 나라를 향해.
그렇게 공연을 마치고 뒤풀이가 있었다. 잠깐 틈을 이용해서 다시 기다림의 등대로 가려는데 경희 활동가님과 은영 활동가님께서 함께주셨다. 굳이 컴컴한 밤에 다시 그곳으로 간 이유는 십 여년전 피해자들이 겪었을 그 고통스런 암흑 속에서 함께 해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이었다. 그렇게 두 둔을 뜨고 숨을 쉬며 바라보고만 있었어야 했을 유가족분들의 헤아릴 수 없는 그 애타는 마음을 함께 나누지 못해서 미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아이들에게 사과하고 싶었다. 미안하다고, 많이 그립다고... 그리고 말해주고 샆었다. 부모님과 유가족분들이 얼마나 훌륭한일을 하고 계신지, 안전의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에서 세월호 사건 이후 생명존중과 안전에 관해 높아진 의식수준이 모두 부모님과 유가족분들이 해내신 일이라고, 블랙홀 같은 고통과 그리움이 사랑으로 이렇게 승화되었다고. 꼭 그곳에서 말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돌아와서 뒤풀이에 참석했다. 어색했던 시간들이 지나고 이야기를 하면서 우재 아버님께서 요리를 매우 잘 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운이 좋게도 우재 아버님과 한 테이블에 앉았다는 것이다. 너무 맛있게 보이는 볶음 요리가 있었는데 분모자 같기도 하고 돼지껍데기 같기도 했는데 그러기에는 너무 부드러워 보였다. 어색했던 시간들이 지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드디어 그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먹게 됐는데 돼지껍데기였다. 오잉? 돼지껍데기가 이렇게 훌륭한 요리가 된다고? 속으로 놀라고 있었는데 앞에 앉아계신 활동가께서도 나랑 같은 생각으로 놀라워하셨다 ㅋㅋㅋ 이건 진짜 우리만 알기 너무 아깝다며 옆에도 권하고 앞에도 권하고 맛있게 먹고 있는데, 우재 아버님께서 갑자기 주방으로 가셔서 주섬주섬 삼겹살을 구워먹던 팬에 햄을 잘라 올리고 고추기름 같은 것을 뿌려서 익힌 후 만들어 오신 소스에 찍어 먹어보라고 주셨다. 오잉??? 앞에 앉았던 활동과님과 나는 큰 기대없이 아는 맛을 생각하고 있었던것 같다. 그런데 반전에 오잉?하고 또 놀랐다. '와~~ 이거 상품화 하셔도 되겠다'고 남녀노소 가리지 않는 재료지만 특히 명동거리나 대학축제, 요즘 아이들이 너무 좋아할 것 같다고 진짜 우리만 알기에는 너무 아까운 맛이라고 했더니 앞에 앉은 활동가님도 힘껏 동의해 주셨다.
이렇게 우재 아버님의 요리에 감탄을 연발하며 노하우를 듣던중 맛탕 얘기가 나왔다. 그래서 맛탕을 해주신다기에 늦은 시간 일이 점점 커지는 것 같아서 사양했더니 잠시 나가시는가 싶더니 금방 신기한 맛탕을 만들어 주셨다. 겉은 고구마 껍질이 그대로 붙어서 바삭한데 속은 진짜 촉촉하고 입 안에 들러 붙는 찐덕함 대신 약간의 끈적이는 물엿으로 버무린 먹기도 편하고 맛도 있는 맛탕이었다. 그 특유의 단 맛과 찐득함으로 평소에는 별로 즐기지 않던 음식이라 매우 놀라고 있는데 앞에 앉으신 활동가님도 역시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계셨던거다. ㅎ,ㅎ 우리는 감탄을 연발하며 우재 아버님을 하루종일 음식을 하게 만든 사람들이 되었다. 그렇지만 너무 맛있었고 정말 감사히 잘 먹었다고 전해본다. 나중에 꼭 다시 먹게 될 수 있기를 바라 본다. 투닥투닥 괜히 투정도 하며 공연시간 때 보았던 노래도 함께하며 이제 안전한 미래를 함께 만들고 우리가 가슴에 안고있는 4월 16일 그날을 잊지말자고 다짐하며 조금 일찍 뒤풀이를 나와서 작은 성당으로 들어갔다. 간절함으로 기도하던 곳, 기도하는 곳. 가톨릭 신자인 나는 잠시 기도를 하고 나올 예정이었는데 갑자기 많은 분들이 오셔서 다같이 짦은 기도를 하고 나왔다. 그렇게 가족들과 팽목항에서의 하루가 아쉽게 지나갔다.
다음날 아침. 아침을 먹지 않은지 몇 십년째인 나로서는 어제 우재 어머님의 요리실력에 감탄을 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식당으로 향했는데 국수같은? 넒은 면이 한솥 삶아져 있었다. 따뜻해 보여서 조금만 속을 달래보자 했던 게 두 그릇을 비웠다. 죽을 먹는 것보다 더 부드럽게 술술 잘 넘어갈 정도였다. 역시 아침을 먹지 않는데 한 그릇을 더 퍼오는 활동가님과 과연 이것이 무얼까 궁금해하며 떠드는 사이 우재 아버님께서 들어오셨다. 웃으면서 "뭔지 가르쳐 줄까?" 해서 우리의 시선이 우재 아버님께로 향했다. 그것은 만두피 였다~~ 오오~~~~ 다들 감탄하며 한 그릇씩 더 하는 사이 어느새 큰 솥의 바닥이 보였다. 아침을 안 먹는 사람일 많을 거라며 작은 솥에 끓이자고 했는데 우재 아버님께서 아무래도 안될 것 같아서 중간에 큰 솥으로 옮겨 끓이셨다고 했다. 우와~~ 선견지명... 진짜 요리사가 여기 계셨다. 그렇게 편안하고 따뜻한 아침을 마치고 서둘러 세월호 선체가 인양되어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준비했다.
서울로 올라가는 시간만 최소 5시간이기에 여유가 없었다. 좀 더 이야기 나누고 함께 시간을 나누었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괜시리 민폐만 끼치고 가는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도 가족분들은 떠나는 우리에게 '기억해줘서 고맙다'며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해 하시는거 같았다. 돌아오는 버스에 오르기 전에 여러 말 대신 긴시간 포옹을 했다. 말을 꺼내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렇게 고향을 떠나는 가족을 보내는 것처럼 끝까지 배웅을 해주셨다. 내년에 또 오겠다는 말을 뒤로하고 그렇게 헤어졌다
버스를 타고 30분쯤 달렸을까 세월호가 보였다. 버스에 내려서 신분증 검사를 하고 안전모를 받아 쓰고 세월호 앞으로 갔다. 세월호를 둘러보며 지금까지 여기 있는 이유와 사고 당시 선체 모습이 왜 그런 모습이 되었는지 여러가지 실험들을 한 이야기를 자세히 안내해주셨다. 안전상의 문제로 지금은 내부 출입을 막고 있어서 아이들이 있었던 내부는 다큐멘터리에서 보았던 화면으로 대신 해야 했지만 차후 보수 작업을 통해 일부라도 공개 예정이라고 하셨다. 바다에 있어 부식도 있고 바람으로 인한 선체 손상도 있었고 초기 대처의 미흡으로 중요한 증거 물품이 보존되지 못하는 아쉬움이 이었지만 세월호는 우리 후손들에게 꼭 알리고 기억해야 하는 참사이므로 하루 빨리 복원되어 공개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바라보고 있자니 답답하고 아픈 마음 헤아릴 수 없는 깊은 응어리들이 올라왔다... 단 하나의 질문. 그들은 왜 구하지 않았는지..... 우리가 잊지 않고 안전과 생명존중에 대한 진실을 계속해서 외쳐야 하는 이유다.

우리는 다시는 이런 상처들을 반복하면 안 된다고 외치지만 아직 그들은 진실조차 밝히고 사과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채 또 다시 참사는 반복됐고, 세월호 유가족분들은 그분들과 손을 잡고 다시 이겨내는 싸움을 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익숙해지는 아픔도 익숙해지는 그리움이란 없다. 참아내는거다. 그만큼 상처는 깊어지고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 지쳐가는 마음들을 함께 나누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더 힘을 내야겠다.
유가족분들은 그 아픔과 고통으로 생명안전과 진실규명을 위한 처절한 싸움으로 대한민국의 안전과 생명이라는 근본적인 바탕을 만드는데 모든 힘을 쏟아내셨다. 그래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는 오히려 내가 치유를 받고 배우고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번 이런 자리를 기획하고 지켜내주시는 모든 분들께 두손 모아 감사드린다.

사실 나는 지금까지 유가족 몇 분 그리고 친한 사람 몇명에게만 털어 놓은 꿈 이야기가 있다. 이상하게 생각하는 분들고 계실 것 같아서... 울고 계시거나 눈물을 참고 계시는 유가족분들을 느껴질 때 아이들은 분명 잘 지내고 있을 것이라며 그날 내가 꾸었던 꿈 이야기를 해드린다. 안전교육센터에서 한 분, 집회장소에서 한 분, 그리고 팽목항에서 한 분, 이렇게 세 분이었다.
세월호참사 발생 당일 나는 집에서 자고 있었는데 칠흙같은 어둠속에서 가라앉은 배가 머리쪽 갑판판 내놓은 채 불꽃놀이 같은 것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 그 배에 있던 사람들은 너무도 평온해 보였고 불꽃들은 힘차게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눈을 떴을 때 '신기하네 가라앉는 배인데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두려움없이 평온하게 불꽃을 바라보고 있지' 참 희안한 꿈이라고 생각하며 방문을 열었는데 뉴스에서 세월호참사 소식을 전하고 있었고, 그때는 당연히 대부분의 사람들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당연히...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기에... 그래서 큰 걱정없이 일상을 이어갔던 생각이 난다. 그러나 이어지는 소식들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점점 꿈 생각이 났고 나는 다시 뉴스를 접했을 때 배 안에 창문을 바라보고 있던 아이들의 모습을 보았고 각인되었다.
세월호를 이야기 할 때 우리 아이들에 관한 희생자분들에 관한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말들은 목에 잠겨 나오지 않았고 왜 구하지 않았나? 그들은 인간으로써 왜 그런일을 저질렀는가에 대한 질문이 모든 말을 대신했다. 왜? 도대체 왜 그래서 많은 사람들을 이다지도 긴 세월 아픔속에 잠겨 그리움에 지치게 하는지 ...
그리고 11월8일 진도로 내려가던 중 버스에서 핸드폰을 보고 있던 중에 갑자기 마음이 아파서 고개를 들어보니 바다가 보였다. 그때 나는 한번 더 믿었다. 아이들이 잘 지내고 있다고...
진도 팽목항 세월호 다섯번째 팽목기억캠프
강동평화의소녀상 보존 시민위원회 강해윤
개인적인 사정으로 이제서야 방문한 진도 팽목항. 그간 계획만 갖고 있던 일들을 4.16연대 활동가분들과 함께 방문하게 되었다. 서울에서는 여러가지 활동과 집회에 참여도 했지만 팽목항을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그 즈음 여러가지 개인적인 사정으로 마음에만 담아두게 되었던 곳 팽목항. 기다림의등대, 기억의 벽, 노란리본, 바다.... 우리 아이들 가족... 우리들의 아픈 기억을... 흔적이 지워지지 않게 유가족 분들이 돌아가며 일상과 함께 지켜내고 있는 곳. 그렇게 11년이 넘게 흘렀고 아직도 우리가 진실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시작점. 진도 팽목항.
점심을 먹고 버스로 이동을 해서 세월호 기억의숲에서 도보로 팽목항까지 걸어왔다.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아이들 얘기도 하고 언제 도착하냐며 괜한 질문도 해서 조금만 더 가면 도착이라는 정해진 답변에 다같이 믿지 못하겠다면 웃어도 보지만 팽목항으로 향하는 그 걸음속에 담김 마음은 다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우리는 아직 개통되지 않은 새로 생긴 도로로 걸었는데 차가 없어서 좀 편안하게 걸을 수 있었다. 앞으로는 이 길을 이용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이용했던 옆으로 보이는 구도로는 좁고 차가 다녀 좀 불편해 보였고 살짝 돌아가야 해서 더 오래 걸어야 했던 것 같다. 일단 앞으로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이 더 안전하게 걸을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라 생각이 들었다.
팽목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저녁식사를 준비중이신 가족분들과 제주에서 다섯번째 팽목기억캠프를 함께 하려고 올라와 준 세제모 학생들이 10명쯤 그리고 저녁 공연을 준비 중인 여러 출연자 분들이 계셨다. 추모동에서 아이들과 인사를 하고 짐을 풀고 안내사항을 듣고 팽목항 주변을 둘러보았다. 팽목항은 기억 강당, 식당, 성당, 그리고 간이 화장실. 이렇게 컨테이너 5개동이 띄엄띄엄 자리 잡고 있었다. 다른 시설들도 많이 낡고 있었지만 화장실은 5분거리 터미널을 이용하는 게 편하다고 안내해 주실 정도로 겨울에는 씻기 힘들 정로 추울 것 같았다. 이렇게 10여 년의 세월을 지켜내고 버텨낸 유가족과 연대해주신 분들 생각에 울컥했다.
제일 처음 보게된 기억관에서 묵념을 하고 아이들 한명 한명 이름을 마음으로 부르며 인사를 대신했다. 기억관이라고 해봤자 아이들 사진, 아이들 이름이 새겨진 손바닥만한 나무배 종이배, 노란 리본들 전국에서 보내 온 추모의 글과 그림, 노란리본들 추모할 수 있는 작은 모형들...이 전부이지만.. 모든 움직임 하나하나가 느껴져 그냥 마음이 따끔거렸다. 인사 후 강당에 짐을 풀고 나오며 신발을 신는데 저녁식사를 준비중인 식당이 보였다. 파랑 바탕에 노랑 고래와 노란풍등 아이들이 그려진 벽 가운데 창문으로 삐쭉 고개를 내민 연통에는 연기가 모락목락 피어 나오고 있었다. 함께 기억해준다는 것만으로 고마워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유가족 분들의 마음이 느껴져서 10여 년의 세월이 야속했다. 식당으로 들어가서 약 50인분의 저녁식사를 준비하시느라 정신없이 바쁜 유가족분들께 인사를 하고 혹시 손이 모자라지 않을까 괜한 질문도 해보다 방해만 될꺼 같아 나왔다. 세종에서 오신 활동가분들 틈에 끼어서 기억의등대로 갔다. 답답한 마음..
이렇게 지켜내주셨다는 감사함 그리고 따뜻한 마음, 미안함 .... 그날 무서운 추위 속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을 희생자분들과 기다리던 사람들, 들리지 않는 대답, 그리고 소중한 우리 가족들, 국민들을 구하지 않았던 그들을 원망하는 마음이 출렁였다. 뒤죽박죽 무능력해진 우리 마음들이 떠올랐다. 짦은 인사를 마치고 기억하기 위한 사진을 몇 장 남기고 유가족 아버님께 그간 겪었던 일들 그리고 새로 자리 잡을 기억관에 관한 이런저런 얘기도 하면서 둘러보는데 비가 점점 더 많이내리기 시작해서 돌아오는 길에 터미널 맞은편의 작은 카페에 추위를 피해 들어갔다. 다 같이 챙겨주신 세종연대활동가님들의 따뜻한 마음에 다시한번 감사드린다.
비가 잦아들 즈음 카페를 나와 저녁을 먹으러 식당으로 향했다. 제주에서 온 세제모(세월호를 기억하는 제주청소년모임) 학생들이 공연을 준비로 먼저 식사를 하고 있어서 다시 잠시 틈이 생겼다. 그때 강당에서는 농협은행 직원 여성모임에서 오신 오카리나 공연팀이 연습을 하고 계셨는데 오카리나 소리가 울려펴지는 소리에 바다를 보고 있자니 언젠가 세월호 안전교육 강의를 들으러 갔을때 보게된 학교에서 웃고 떠들던 아이들의 모습이 생각났다. 교복치마에 체육복 바지를 입고 티없이 웃던 아이들 체육복과 교복을 입고 장난치던 아이들.... 그렇게 문득 우리 아이들이 명예졸업장을 받았다는 것이 다시 생각이 나니 바다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할 정도로 원망스런 마음이 들었다. 바다를 원망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10여년의 세월, 아이들의 기억을 잊혀지지 않게 하기위해 치열하게 지켜낸 유가족 분들이 더 지치지 않게 함께하는 것이 앞으로 우리가 해야하는 일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 저녁을 먹으러 식당으로 들어오라고 하셔서 들어간 식당에는 뷔페가 차려져 있었다. 정성을 다해 준비해주신 맛있는 저녁을 감사히 먹고 공연을 보러 강당으로 이동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제주에서 온 세제모 학생들의 군무시간. 너무 열심히 마음을다 해 추고 있다는 순수함이 느껴진 순간 제주로 향하는 배를 기다리며 수학여행 장기자랑을 몰래 준비했을 아이들이 모습이 생각났다. 세제모학생들 사이사이 함께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았다. 눈물이 나서 누군가와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추스려가는 마음에 커져가는 그리움에 혹시나 내 눈물이 또다시 작은 상처가 되지는 않을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중에 보니 나만 눈물이 난 게 아니라서 다행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정성스럽게 준비해주신 전통 풍물놀이. 우리네 아픈역사 5월의 노래를 4월의 노래로 개사해서 불러주신 광주에서 활동하신다는 남녀듀오 박성언밴드, 마음을 토닥여주시는 듯한 진도 농협은행 여성회 오카리나연주와 노래, 안산에서 예술활동을 하시는 내외분 오늘 팽목항을 지켜주시고 캠프를 준비해주신 유가족분들 우리는 그렇게 한 마음으로 공연을 지켜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알아가고 같은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온전한 진실 생명존중 안전한 나라를 향해.
그렇게 공연을 마치고 뒤풀이가 있었다. 잠깐 틈을 이용해서 다시 기다림의 등대로 가려는데 경희 활동가님과 은영 활동가님께서 함께주셨다. 굳이 컴컴한 밤에 다시 그곳으로 간 이유는 십 여년전 피해자들이 겪었을 그 고통스런 암흑 속에서 함께 해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이었다. 그렇게 두 둔을 뜨고 숨을 쉬며 바라보고만 있었어야 했을 유가족분들의 헤아릴 수 없는 그 애타는 마음을 함께 나누지 못해서 미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아이들에게 사과하고 싶었다. 미안하다고, 많이 그립다고... 그리고 말해주고 샆었다. 부모님과 유가족분들이 얼마나 훌륭한일을 하고 계신지, 안전의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에서 세월호 사건 이후 생명존중과 안전에 관해 높아진 의식수준이 모두 부모님과 유가족분들이 해내신 일이라고, 블랙홀 같은 고통과 그리움이 사랑으로 이렇게 승화되었다고. 꼭 그곳에서 말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돌아와서 뒤풀이에 참석했다. 어색했던 시간들이 지나고 이야기를 하면서 우재 아버님께서 요리를 매우 잘 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운이 좋게도 우재 아버님과 한 테이블에 앉았다는 것이다. 너무 맛있게 보이는 볶음 요리가 있었는데 분모자 같기도 하고 돼지껍데기 같기도 했는데 그러기에는 너무 부드러워 보였다. 어색했던 시간들이 지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드디어 그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먹게 됐는데 돼지껍데기였다. 오잉? 돼지껍데기가 이렇게 훌륭한 요리가 된다고? 속으로 놀라고 있었는데 앞에 앉아계신 활동가께서도 나랑 같은 생각으로 놀라워하셨다 ㅋㅋㅋ 이건 진짜 우리만 알기 너무 아깝다며 옆에도 권하고 앞에도 권하고 맛있게 먹고 있는데, 우재 아버님께서 갑자기 주방으로 가셔서 주섬주섬 삼겹살을 구워먹던 팬에 햄을 잘라 올리고 고추기름 같은 것을 뿌려서 익힌 후 만들어 오신 소스에 찍어 먹어보라고 주셨다. 오잉??? 앞에 앉았던 활동과님과 나는 큰 기대없이 아는 맛을 생각하고 있었던것 같다. 그런데 반전에 오잉?하고 또 놀랐다. '와~~ 이거 상품화 하셔도 되겠다'고 남녀노소 가리지 않는 재료지만 특히 명동거리나 대학축제, 요즘 아이들이 너무 좋아할 것 같다고 진짜 우리만 알기에는 너무 아까운 맛이라고 했더니 앞에 앉은 활동가님도 힘껏 동의해 주셨다.
이렇게 우재 아버님의 요리에 감탄을 연발하며 노하우를 듣던중 맛탕 얘기가 나왔다. 그래서 맛탕을 해주신다기에 늦은 시간 일이 점점 커지는 것 같아서 사양했더니 잠시 나가시는가 싶더니 금방 신기한 맛탕을 만들어 주셨다. 겉은 고구마 껍질이 그대로 붙어서 바삭한데 속은 진짜 촉촉하고 입 안에 들러 붙는 찐덕함 대신 약간의 끈적이는 물엿으로 버무린 먹기도 편하고 맛도 있는 맛탕이었다. 그 특유의 단 맛과 찐득함으로 평소에는 별로 즐기지 않던 음식이라 매우 놀라고 있는데 앞에 앉으신 활동가님도 역시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계셨던거다. ㅎ,ㅎ 우리는 감탄을 연발하며 우재 아버님을 하루종일 음식을 하게 만든 사람들이 되었다. 그렇지만 너무 맛있었고 정말 감사히 잘 먹었다고 전해본다. 나중에 꼭 다시 먹게 될 수 있기를 바라 본다. 투닥투닥 괜히 투정도 하며 공연시간 때 보았던 노래도 함께하며 이제 안전한 미래를 함께 만들고 우리가 가슴에 안고있는 4월 16일 그날을 잊지말자고 다짐하며 조금 일찍 뒤풀이를 나와서 작은 성당으로 들어갔다. 간절함으로 기도하던 곳, 기도하는 곳. 가톨릭 신자인 나는 잠시 기도를 하고 나올 예정이었는데 갑자기 많은 분들이 오셔서 다같이 짦은 기도를 하고 나왔다. 그렇게 가족들과 팽목항에서의 하루가 아쉽게 지나갔다.
다음날 아침. 아침을 먹지 않은지 몇 십년째인 나로서는 어제 우재 어머님의 요리실력에 감탄을 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식당으로 향했는데 국수같은? 넒은 면이 한솥 삶아져 있었다. 따뜻해 보여서 조금만 속을 달래보자 했던 게 두 그릇을 비웠다. 죽을 먹는 것보다 더 부드럽게 술술 잘 넘어갈 정도였다. 역시 아침을 먹지 않는데 한 그릇을 더 퍼오는 활동가님과 과연 이것이 무얼까 궁금해하며 떠드는 사이 우재 아버님께서 들어오셨다. 웃으면서 "뭔지 가르쳐 줄까?" 해서 우리의 시선이 우재 아버님께로 향했다. 그것은 만두피 였다~~ 오오~~~~ 다들 감탄하며 한 그릇씩 더 하는 사이 어느새 큰 솥의 바닥이 보였다. 아침을 안 먹는 사람일 많을 거라며 작은 솥에 끓이자고 했는데 우재 아버님께서 아무래도 안될 것 같아서 중간에 큰 솥으로 옮겨 끓이셨다고 했다. 우와~~ 선견지명... 진짜 요리사가 여기 계셨다. 그렇게 편안하고 따뜻한 아침을 마치고 서둘러 세월호 선체가 인양되어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준비했다.
서울로 올라가는 시간만 최소 5시간이기에 여유가 없었다. 좀 더 이야기 나누고 함께 시간을 나누었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괜시리 민폐만 끼치고 가는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도 가족분들은 떠나는 우리에게 '기억해줘서 고맙다'며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해 하시는거 같았다. 돌아오는 버스에 오르기 전에 여러 말 대신 긴시간 포옹을 했다. 말을 꺼내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렇게 고향을 떠나는 가족을 보내는 것처럼 끝까지 배웅을 해주셨다. 내년에 또 오겠다는 말을 뒤로하고 그렇게 헤어졌다
버스를 타고 30분쯤 달렸을까 세월호가 보였다. 버스에 내려서 신분증 검사를 하고 안전모를 받아 쓰고 세월호 앞으로 갔다. 세월호를 둘러보며 지금까지 여기 있는 이유와 사고 당시 선체 모습이 왜 그런 모습이 되었는지 여러가지 실험들을 한 이야기를 자세히 안내해주셨다. 안전상의 문제로 지금은 내부 출입을 막고 있어서 아이들이 있었던 내부는 다큐멘터리에서 보았던 화면으로 대신 해야 했지만 차후 보수 작업을 통해 일부라도 공개 예정이라고 하셨다. 바다에 있어 부식도 있고 바람으로 인한 선체 손상도 있었고 초기 대처의 미흡으로 중요한 증거 물품이 보존되지 못하는 아쉬움이 이었지만 세월호는 우리 후손들에게 꼭 알리고 기억해야 하는 참사이므로 하루 빨리 복원되어 공개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바라보고 있자니 답답하고 아픈 마음 헤아릴 수 없는 깊은 응어리들이 올라왔다... 단 하나의 질문. 그들은 왜 구하지 않았는지..... 우리가 잊지 않고 안전과 생명존중에 대한 진실을 계속해서 외쳐야 하는 이유다.
우리는 다시는 이런 상처들을 반복하면 안 된다고 외치지만 아직 그들은 진실조차 밝히고 사과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채 또 다시 참사는 반복됐고, 세월호 유가족분들은 그분들과 손을 잡고 다시 이겨내는 싸움을 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익숙해지는 아픔도 익숙해지는 그리움이란 없다. 참아내는거다. 그만큼 상처는 깊어지고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 지쳐가는 마음들을 함께 나누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더 힘을 내야겠다.
유가족분들은 그 아픔과 고통으로 생명안전과 진실규명을 위한 처절한 싸움으로 대한민국의 안전과 생명이라는 근본적인 바탕을 만드는데 모든 힘을 쏟아내셨다. 그래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는 오히려 내가 치유를 받고 배우고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번 이런 자리를 기획하고 지켜내주시는 모든 분들께 두손 모아 감사드린다.
사실 나는 지금까지 유가족 몇 분 그리고 친한 사람 몇명에게만 털어 놓은 꿈 이야기가 있다. 이상하게 생각하는 분들고 계실 것 같아서... 울고 계시거나 눈물을 참고 계시는 유가족분들을 느껴질 때 아이들은 분명 잘 지내고 있을 것이라며 그날 내가 꾸었던 꿈 이야기를 해드린다. 안전교육센터에서 한 분, 집회장소에서 한 분, 그리고 팽목항에서 한 분, 이렇게 세 분이었다.
세월호참사 발생 당일 나는 집에서 자고 있었는데 칠흙같은 어둠속에서 가라앉은 배가 머리쪽 갑판판 내놓은 채 불꽃놀이 같은 것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 그 배에 있던 사람들은 너무도 평온해 보였고 불꽃들은 힘차게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눈을 떴을 때 '신기하네 가라앉는 배인데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두려움없이 평온하게 불꽃을 바라보고 있지' 참 희안한 꿈이라고 생각하며 방문을 열었는데 뉴스에서 세월호참사 소식을 전하고 있었고, 그때는 당연히 대부분의 사람들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당연히...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기에... 그래서 큰 걱정없이 일상을 이어갔던 생각이 난다. 그러나 이어지는 소식들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점점 꿈 생각이 났고 나는 다시 뉴스를 접했을 때 배 안에 창문을 바라보고 있던 아이들의 모습을 보았고 각인되었다.
세월호를 이야기 할 때 우리 아이들에 관한 희생자분들에 관한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말들은 목에 잠겨 나오지 않았고 왜 구하지 않았나? 그들은 인간으로써 왜 그런일을 저질렀는가에 대한 질문이 모든 말을 대신했다. 왜? 도대체 왜 그래서 많은 사람들을 이다지도 긴 세월 아픔속에 잠겨 그리움에 지치게 하는지 ...
그리고 11월8일 진도로 내려가던 중 버스에서 핸드폰을 보고 있던 중에 갑자기 마음이 아파서 고개를 들어보니 바다가 보였다. 그때 나는 한번 더 믿었다. 아이들이 잘 지내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