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목기억캠프를 다양한 시선에서 담았습니다. 석현 님은 최근 청년 책모임과 아카데미, 임경빈 군 구조지연 항소심 정당판결촉구 1인시위 등 4.16연대 활동에서 자주 만나고 있습니다. 석현 님은 늘 노란 신발끈이 묶인 노란 신발에 노란 리본을 달고 오시는데요. 그 신발을 신고 팽목기억관에 다녀오셨다고 하여 후기를 부탁했습니다. 석현 님의 시선으로 지난 11월 8~9일간 진행된 팽목기억캠프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4.16연대 사무처 정옥다예
아픔으로 연결된 우리들
이석현
이번 겨울 동안 구미에서 지내게 되었다. 이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고, 감사하게도 대구 4.16연대와 연락이 닿았다. 그 즈음 '팽목기억캠프'도 갈지 말지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대구 차에 한 자리 남아요~"라는 위원장님의 초대에 팽목을 가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기억의 숲에서 순례길을 따라 팽목으로 향했다. 팽목을 간 건 이번이 세 번째다. 오랜만에 보는 분들이 반가웠고, 처음 보는 분들은 더 반가웠다. 지난번 팽목에 왔을 때 새로운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들뜬 마음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출발할 무렵 하늘이 많이 흐리고 바람도 불었다. 중간에는 비도 내리기 시작해서 모두 가방을 열어 서로에게 노란 우비를 나누어 주었다. 진도에는 아직 단풍이 많이 물들지 않았는데, 행렬이 길을 노랗게 적시고 있는 것 같아 보기 좋았다. 팽목에 도착하니 먼저 도착해 계셨던 부모님들께서 우리를 따뜻하게 환영해주셨다.

아까보다 비가 더 많이 내리고 바람도 불어서 예정되었던 팽목항 깃발 교체는 미뤄졌다. 그 시간동안 모두들 저마다 시간을 보냈는데, 노란 우비를 입은 채로 팽목항을 돌아다니며 사진으로 담아가거나 기억관에 들러 추모를 하고 글을 남기는 모습도 보였다. 식당에는 부모님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사람들도 모락모락 모여있었고, 강당에서는 잠시 뒤에 있을 문화제 공연 연습을 하는 소리도 들려왔다. 지금 비바람이 불고 있는 곳에 서있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따스했다.

"엄마가 저번에 만들어 준거, 리본 있잖아. 팽목에 남기고 와도 될까?"
얼마 전 일이다. 엄마와 함께 걷던 어느 날, 직접 뜬 노란 리본을 가방에 매달고 다니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그 리본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엄마께 "우리 엄마 저런 거 만들 줄은 아시려나?"라고 놀렸더니 집에 오시자마자 스무 개가 넘는 리본을 만들어 놓으셨다. 그 리본을 몇 개를 챙겨 내려왔는데, 이번에 등대 근처에 매달고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녁에는 문화제가 있었다. 오카리나를 연주하셨던 어느 어머니의 손가락이 가장 기억에 남아 있다. 그 어머니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오카리나를 연주해주셨는데, 그 모습에서 노래로 응원을 하시려는 마음이 참 순수하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 ‘오월, 기다림’도 기억에 남는다. 이 노래는 작년 광주에서 처음 들었는데 그때도 노래가 너무 좋아서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가 울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는 ‘오월’을 ‘사월’로 바꾸어 불러주셨는데, 노래 시작부터 끝까지 계속 눈물을 흘렸다.
다음날 아침, 하늘은 무척 맑았고 어제 하지 못했던 깃발 교체를 할 수 있었다. 그동안 방파제를 지켜주던 깃발들이 색이 바래져 있었는데, 그 깃발들을 걷고 새로운 깃발로 교체하는 활동이었다. 깃발을 교체하니 노란 깃발이 가을 하늘과 어우러지며 예쁘게 보였다. 펄럭이는 깃발들이 보이는 방파제의 가장자리를 보니 이번 팽목항에서의 활동을 마무를 수 있을 것 같았다. 깃발 교체를 하는 동안, 부모님들께서 따뜻한 감자 수제비를 아침으로 준비해주셨다. 그리고 부모님과 인사를 하며 다음에 또 오겠다는 약속을 했다.

서로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아픔으로 연결되어 만난다. 도움이 되고 싶어 시작한 활동들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만 하게 된다. 이렇게만 살아가도 되는 걸까, 나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살고 있을까?
아픔으로 연결된 우리들
이석현
이번 겨울 동안 구미에서 지내게 되었다. 이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고, 감사하게도 대구 4.16연대와 연락이 닿았다. 그 즈음 '팽목기억캠프'도 갈지 말지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대구 차에 한 자리 남아요~"라는 위원장님의 초대에 팽목을 가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기억의 숲에서 순례길을 따라 팽목으로 향했다. 팽목을 간 건 이번이 세 번째다. 오랜만에 보는 분들이 반가웠고, 처음 보는 분들은 더 반가웠다. 지난번 팽목에 왔을 때 새로운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들뜬 마음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출발할 무렵 하늘이 많이 흐리고 바람도 불었다. 중간에는 비도 내리기 시작해서 모두 가방을 열어 서로에게 노란 우비를 나누어 주었다. 진도에는 아직 단풍이 많이 물들지 않았는데, 행렬이 길을 노랗게 적시고 있는 것 같아 보기 좋았다. 팽목에 도착하니 먼저 도착해 계셨던 부모님들께서 우리를 따뜻하게 환영해주셨다.
아까보다 비가 더 많이 내리고 바람도 불어서 예정되었던 팽목항 깃발 교체는 미뤄졌다. 그 시간동안 모두들 저마다 시간을 보냈는데, 노란 우비를 입은 채로 팽목항을 돌아다니며 사진으로 담아가거나 기억관에 들러 추모를 하고 글을 남기는 모습도 보였다. 식당에는 부모님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사람들도 모락모락 모여있었고, 강당에서는 잠시 뒤에 있을 문화제 공연 연습을 하는 소리도 들려왔다. 지금 비바람이 불고 있는 곳에 서있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따스했다.
"엄마가 저번에 만들어 준거, 리본 있잖아. 팽목에 남기고 와도 될까?"
얼마 전 일이다. 엄마와 함께 걷던 어느 날, 직접 뜬 노란 리본을 가방에 매달고 다니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그 리본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엄마께 "우리 엄마 저런 거 만들 줄은 아시려나?"라고 놀렸더니 집에 오시자마자 스무 개가 넘는 리본을 만들어 놓으셨다. 그 리본을 몇 개를 챙겨 내려왔는데, 이번에 등대 근처에 매달고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녁에는 문화제가 있었다. 오카리나를 연주하셨던 어느 어머니의 손가락이 가장 기억에 남아 있다. 그 어머니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오카리나를 연주해주셨는데, 그 모습에서 노래로 응원을 하시려는 마음이 참 순수하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 ‘오월, 기다림’도 기억에 남는다. 이 노래는 작년 광주에서 처음 들었는데 그때도 노래가 너무 좋아서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가 울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는 ‘오월’을 ‘사월’로 바꾸어 불러주셨는데, 노래 시작부터 끝까지 계속 눈물을 흘렸다.
다음날 아침, 하늘은 무척 맑았고 어제 하지 못했던 깃발 교체를 할 수 있었다. 그동안 방파제를 지켜주던 깃발들이 색이 바래져 있었는데, 그 깃발들을 걷고 새로운 깃발로 교체하는 활동이었다. 깃발을 교체하니 노란 깃발이 가을 하늘과 어우러지며 예쁘게 보였다. 펄럭이는 깃발들이 보이는 방파제의 가장자리를 보니 이번 팽목항에서의 활동을 마무를 수 있을 것 같았다. 깃발 교체를 하는 동안, 부모님들께서 따뜻한 감자 수제비를 아침으로 준비해주셨다. 그리고 부모님과 인사를 하며 다음에 또 오겠다는 약속을 했다.
서로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아픔으로 연결되어 만난다. 도움이 되고 싶어 시작한 활동들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만 하게 된다. 이렇게만 살아가도 되는 걸까, 나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