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닮은 사람[16일의편지-2023년 1월] 꾸준함으로 곁을 지키는 사람, 랑희 회원을 만나다

2023-01-16

꾸준함으로 곁을 지키는 사람, 랑희 회원을 만나다

 

<토요일의 친구들이 2014년 '행동하는 기억416'이라는 이름으로 매주 토요일 4:16에 시청광장(이후에는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서 세월호참사를 기억하며 노란 종이배를 접고 책을 낭독하는 시간을 만들었어요.>


운영위원으로도 활약하는 랑희 회원의 본명은 랑희다. 이름에서 성만 탈각해낸 거다. 인천 부평 지역에 있는 ‘인권운동공간 활(이하 활)’에서 활동한다. 활은 인천퀴어문화축제나 인천인권영화제 주최 단체이기도 한데 주로 노동 사안과 반차별 운동을 한다. 랑희는 주로 경찰 공권력 관련 사안에 집중한다. 집회 시위의 자유와 국가폭력 관련 전문가라고나 할까.

활의 다른 활동가인 기선과는 학생운동 때 얼굴을 익혔다. 학생운동은 3학년 때 ‘그냥 선배가 과 학생회 나가보지 않으련?’이라는 권유에서 시작했다. 랑희는 선배들이 유심히 보지 않는 후배였다. 지금처럼 발랄하게 하고 다니는 랑희를 선배들은 ‘노는 애’로 보았지, ‘운동할 후배’로 보지 않았던 거다. 하지만 세월이란 검증의 시간을 거치면 있는 척, 센 척하던 이들의 흔적은 사라지고 없거나 변절해 있기 일쑤라는 경험을 한다. 두드러지지 않으면서도 꾸준하고 한결같은 존재의 소중함이 남는다.

“같이 늙어가면서 한 투쟁이었죠. 형들이 늙는 과정에서 같이 늙어왔어요. 인연이 오래고 투쟁이 길어서 남다르긴 했고요.”

<콜트콜텍 기타노동자 후원을 위한 판매 사진: 바느질 작가 차강이 만든 디자인으로 에코백에 수를 놓아 후원 판매를 했습니다. 콜트콜텍 기타노동자 투쟁 동안 정말 많은 후원행사를 했는데 감사하게도 그때마다 많은 분들이 참여해서 늘 완판을 하곤 했어요.>

랑희를 처음 만난 건 우리나라 최장기 정리해고 투쟁사업장으로 ‘끝장 투쟁’을 선언한 콜텍 농성장에서였다. 기타 제조업체인 콜트·콜텍에서 부당해고된 지 햇수로 13년이었고, 임재춘 동지가 단식 농성을 하고 있었다. 연대 시민들은 농성장으로 와서 피케팅도 하고 하루 단식도 하며 사진 찍어 SNS에 올렸다. 물론 자신의 활동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라 농성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농성 천막을 묵묵히 지키는 활동가들의 모습이 차차 눈에 들어왔다. 무언가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했을 때 단식농성자의 어깨를 감싸고 같이 눈물 흘리는 연대 시민의 모습과 더불어,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눈시울을 훔치는 실무 활동가들의 모습이 함께 눈에 들어온 거였다. 곁을 지킨다는 게 무언지 느껴지는 지점이었다.

랑희는 4.16연대가 내부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던 전환기의 시기에 운영위원으로 등판했다. 안전사회위원회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운영위원 연임 의사를 묻자 긍정 답변이 돌아왔다. 4.16운동이 앞으로 어떻게 지속될 수 있을까, 변화를 이 사회에 만들어 낼 수 있을까, 향후 우리 사회 변화를 만들어 낸다면 그 안전 사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에서 내놓은 내용들이 사라지지 않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기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함께 풀고 싶은 숱한 고민이 있기 때문이다. 어렵겠지만 10주기를 바라보며 지반을 같이 만들어 가야 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진상규명이 뭘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면서의 우려도 있다. 어떤 사건을 1부터 100까지 펙트 확인하고 그게 다 맞아야 한다는 건 불가능할 테고, 빈 구멍이 있을 수밖에 없고 다 확인할 수든 없는 일이니 그러하다. 물론 그런데도 참사가 왜 일어났는지, 무엇 때문이었는지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의 이유가 아니라 복합적이고 누적된 여러 요인이 작용한 것을 간과하기 어렵고, 낱낱이 아귀가 맞는 100%는 불가능하기에 또 알 수 없는 부분들이 남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세월호 참사 초기 랑희는 대책위에 들어가기보다 공권력 탄압이 심한 상황에 피해자와 연대자들이 목소리를 내는 중요한 공간인 집회를 챙기는 것에 주력했다. 피해자들은 물론 연대자들도 처음 집회에 나온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 연행이며 사후 소환장을 경험하는 일은 무서운 일이기도 했고, ‘내가 또 나갈 수 있을까?’ 두려움이 생기는 일이기도 했다. 랑희는 그런 것들에 함께 대처하고 지원하는 것이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당신만 혼자 겪을 두려움이 아니다, 우리가 함께 할 거다’ 모니터링하고 문제 제기하고 대응하고 법적 지원을 하며 버팀목이 돼 주는 일이었다. 정보기관인 경찰의 사찰 문제 등은 랑희의 현재진행형 주 관심사이기도 하다.

랑희는 어정쩡하고 포장만 그럴싸한 정부였던 문재인 정권을 ‘욕먹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정권이자 정치력 없는 정권으로 규정한다. 민주당이라고 해서 개혁적이거나 계급적 인식을 하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문재인 정권이 가시적으로 탄압하지 않고 편들어주는 척했던 정권이었다면 윤석열 정권은 전략적인지, 무식해서인지, 말이 안 되는 행동을 하고 있어서 혼란스럽기만 하단다. 이러한 와중에 맞이하는 새해다.

1월 16일의 편지에서 랑희가 새해 인사를 전한다.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하면서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올해도 쉽지 않겠다는 생각에 걱정이 드는 새해. 힘들겠지만, 서로에게 힘이 되고 곁을 내주면서 좋은 일을 많이 만들어가자는 덕담이다. 서로의 곁을 지켜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