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논평[9주기 기억식] 4.16세월호참사 10주기를 준비하는 우리의 약속과 다짐

4.16세월호참사 10주기를 준비하는 우리의 약속과 다짐
(가칭)4.16세월호참사 10주기 위원회 제안문

그해 4월 16일을 우리는 잊을 수 없습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에 따라 구조를 기다린 시민 304명이 희생되었습니다. 살아온 이들은 있었지만, 구조받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국가는 국민을 구할 책무를 저버리고 배반했습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슬픔과 분노 속에서 피해자들이 일어섰습니다. 결코 아물지 않을 크나큰 상처를 서로 보듬으며 무너져 내리는 몸과 마음을 함께 일으켜 진실을 인양하고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한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참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생명이 존중되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고 호소했습니다.

시민들이 함께 일어섰습니다.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다짐했습니다. 세월호참사를 계기로 우리 모두가 우연히 살아남았을 뿐 어느 누구도 재난참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끝까지 가보지 못한 길이었습니다. 참사는 반복되지만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대책 수립과 이행, 어느 하나도 제대로 이루어진 적이 없었습니다. 국민을 구하는데 나타나지 않았고 작동하지 않았던 국가는 진실을 감추고 책임을 회피하고 피해자와 시민을 억누르고 핍박하는 일에는 체계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치유받아야 할 피해자들은 차별과 혐오, 이어지는 2차, 3차 가해로 더욱 고통받아야 했습니다.

우리가 진실을 향한 여정을 시작한 지 9년이 지났습니다. 지난 9년간 우리는 한순간도 ‘완전한 진실과 책임’, ‘안전한 사회’를 향한 우리의 약속과 다짐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그것이 온전한 추모와 치유의 길이고 우리 모두를 살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이전에 이루지 못한 많은 일을 함께 해냈습니다. 전국에 노란 리본의 물결이 이어지게 했고, 천만 명 이상의 마음을 모아 사상 최초로 특별법을 통한 독립적인 진상조사기구를 출범시키기도 했습니다. 세월호 선체를 인양하여 미수습자를 수습하고 정권의 탄압으로 중단되었던 독립적인 진상조사도 재개했습니다. 세월호참사뿐만 아니라 다른 수많은 재난참사와 그 피해자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보다 안전한 사회를 향한 시민들의 의지와 연대를 굳건히 해왔습니다. 박근혜 정권을 탄핵한 촛불도 우리가 만들어낸 새로운 역사의 일부입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그날의 진실을 모두 밝히지는 못했습니다. 지난해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이 공식 종료되었지만, 침몰원인도 구조방기의 이유도 온전히 규명되지 않았습니다. 진상규명 은폐와 피해자 핍박의 실체가 드러났지만, 일부만 밝혀졌을 뿐입니다. 구조를 방기한 재난대응 컨트롤타워는 제대로 조사하지도 처벌하지도 못했습니다. 해경지휘부에 대해서도 아직 응당한 사법적 책임을 묻지 못했습니다.

국가는 아직 세월호참사와 그 이후의 국가범죄에 대해 공식적으로 인정하지도 사과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사참위 권고 이행을 비롯한 추가적 조치의 이행도 답보되고 있습니다. 진실규명이 답보되고 국가권력이 저지른 잘못과 범죄에 대한 처벌이 지체되는 사이, 우리가 그토록 막아내려 했던 사회적 참사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10.29 이태원 참사가 그 가슴 아픈 증거입니다.

생명과 안전이 모두의 권리로 보장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지난 9년을 달려왔음에도 10.29 이태원 참사 같은 사회적 참사가 재발되고 세월호참사 피해자들이 겪었던 권리 침해와 모독이 이태원 참사의 피해자들에게 재연되는 것에 개탄합니다. 더욱이 이태원 참사의 책임을 회피하고 피해자들의 정당한 권리 주장을 핍박하기 위해, 세월호참사 피해자와 시민들이 피눈물로 이루어온 진상 규명의 여정마저 폄훼하고 깎아내리려는 시도도 더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안전한 사회를 향해 팽목항에서 시작한 우리의 여정이 크나큰 장애물을 만나 가운데, 내년이면 세월호참사 10주기를 맞습니다. 그동안 정말로 많은 분들이 이 여정에 함께 해 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우리가 만들어온 역사, 우리가 맺어온 연대가 자랑스럽습니다. 피해자가 앞장서고 시민들이 공감하며 협력하는, 전인미답의 새로운 길을 열어왔습니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와 4.16연대, 4.16재단이 4.16운동에 함께 해온 각계각층 시민들을 모시고 (가칭)4.16세월호참사 10주기 위원회를 오는 5월 발족하고자 합니다. 참사 10주기를 앞두고, 잊지 않고 함께 행동하기로 했던 모두의 마음을 다시 모아주실 것을 호소합니다. 아직 규명되지 않은 진실을 찾아나가는 일도, 희생자를 온전히 애도하고 피해를 치유하는 일도, 보다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일도 여기서 멈출 수 없습니다. 우리의 경험과 여정을 기록하고 나누고 재해석하는 일도 꼭 필요합니다. 10주기를 계기로 우리의 연대는 다른 재난참사에 관한 연대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10주기를 준비하며 우리는 세월호참사뿐만 아니라 반복되어온 수많은 재난참사의 피해자들과 더 폭넓게 소통하고 더 단단하게 연대할 것입니다.

(가칭)4.16세월호참사 10주기 위원회와 더불어 모두가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를 제도적으로 확립하고, 모든 재난참사 피해자들의 권리를 보장하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외면하는 국가권력이 영원히 발붙이지 못하게 하기 위한 새로운 다짐, 새로운 약속, 새로운 행동을 시작합시다. 

2023년 4월 16일
<(가칭)4.16세월호참사 10주기 위원회> 준비위원회